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종교 없는 지성인, 그리고 지성 없는 종교인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아. 이 말이 참이냐 거짓이냐 따지면 좀 곤란해. 지성도 종교도 없는 이, 또는 지성있는 종교인도 너무 많으니까. 그러니 '진리'가 아니라, 단지 '일리'있는 말이라고 생각해보는 거야. 요즘 티비에도 잘 나오는 김정운 교수가 그랬대. 젊은이여, 너무 그렇게 '진리'를 찾지 마라. '일리'가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참 맘이 편해지는 말이지 않아?
어쨌든, '지성없는 종교인'이란 아마도 '교회다니는 넘들은 지성이 없어요'라는 뜻은 아닐 거야. 그보단 '의심과 회의, 지성과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의 인간'을 뜻하는 것일 거야. 그의 종교가 기독교이든, 이슬람이든, 불교든, 돈을 숭배하는 자본주의교이든.
'종교 없는 지성인' 이란 말 역시 '적어도 지성있는 인간이라면 종교 따위를 믿을 리 없지'라는 의미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영성과 각성 없이 자신의 이성만 의지하는 관념론자를 비판한 말일 수도 있거든.
누군가 내게 말하길, 자기는 성경의 인물 중 도마가 그렇게 맘에 들더래. 예수가 부활하고서 제자들 앞에 나타났을 때, 예수를 의심했던 유일한 제자. 예수의 옆구리, 창에 찔린 그 상처를 손가락으로 쿡 찔러보고서야 예수의 부활을 믿었던 도마. 쿡...도마가 예수의 옆구리의 그 깊은 상처에 손가락을 갖다대는 순간을 상상해보면 괜히 내가 찌릿찌릿해져. 모두가 넙죽 엎드릴 때, 나는 도저히 못믿겠소, 예수의 두눈을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러나 밀리지 않고 바라봤던 도마. 아름다운 의심의 순간. 그리고 진리를 확인하는 각성의 순간. 그렇게 의심(회의할 줄 아는 능력, 즉 지성)과 믿음(종교라고 해도 무방)이 도마 안에서는 다 가능하고, 당연했던 거지.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 20:24,25)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가 짠 부활했을 때, 도마는 그 현장에 없었어! 다른 동료들이 와서 "도마야, 완전 대박, 대박! 예수가...세상에...부활했어~~" 이렇게 전해듣는 상황이었던 거지. 그럴 때 우리의 합리적 이성이자 경험주의자인 도마는 경거망동, 부화뇌동하지 않고 "일단 내가 보고~"라며 판단 유보를 한 거야. 나중에 예수가 직접 상처를 보여주자 곧바로 "님 예수 인정~"한 거고. 예수가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옷까고 상처 보여준 것도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해. 니 내 보고도 몬믿나, 믿으라, 믿으라 이 xx야. 이렇게 윽박지르지 않은 것. 쟤는 믿는데 넌 왜 안믿어? 라고 하지 않은 것. 도마의 스타일을 잘 아셨던 예수는 그래 이자슥아, 어디 함 만져봐라, 한 거지. 그리고 나서 인간적으로는 좀 섭섭하셨던 나머지 이렇게 덧붙이시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 20:29)
그렇다하더라도 나는 도마식 믿음에 한표를 던지니, 간절히 바라되 의심의 끈(지성)을 놓지 않는 것이 인간이 믿음(이라기보단 각성의 순간과 그 후에 오는 신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야.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아. 이 말이 참이냐 거짓이냐 따지면 좀 곤란해. 지성도 종교도 없는 이, 또는 지성있는 종교인도 너무 많으니까. 그러니 '진리'가 아니라, 단지 '일리'있는 말이라고 생각해보는 거야. 요즘 티비에도 잘 나오는 김정운 교수가 그랬대. 젊은이여, 너무 그렇게 '진리'를 찾지 마라. '일리'가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참 맘이 편해지는 말이지 않아?
어쨌든, '지성없는 종교인'이란 아마도 '교회다니는 넘들은 지성이 없어요'라는 뜻은 아닐 거야. 그보단 '의심과 회의, 지성과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의 인간'을 뜻하는 것일 거야. 그의 종교가 기독교이든, 이슬람이든, 불교든, 돈을 숭배하는 자본주의교이든.
'종교 없는 지성인' 이란 말 역시 '적어도 지성있는 인간이라면 종교 따위를 믿을 리 없지'라는 의미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영성과 각성 없이 자신의 이성만 의지하는 관념론자를 비판한 말일 수도 있거든.
누군가 내게 말하길, 자기는 성경의 인물 중 도마가 그렇게 맘에 들더래. 예수가 부활하고서 제자들 앞에 나타났을 때, 예수를 의심했던 유일한 제자. 예수의 옆구리, 창에 찔린 그 상처를 손가락으로 쿡 찔러보고서야 예수의 부활을 믿었던 도마. 쿡...도마가 예수의 옆구리의 그 깊은 상처에 손가락을 갖다대는 순간을 상상해보면 괜히 내가 찌릿찌릿해져. 모두가 넙죽 엎드릴 때, 나는 도저히 못믿겠소, 예수의 두눈을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러나 밀리지 않고 바라봤던 도마. 아름다운 의심의 순간. 그리고 진리를 확인하는 각성의 순간. 그렇게 의심(회의할 줄 아는 능력, 즉 지성)과 믿음(종교라고 해도 무방)이 도마 안에서는 다 가능하고, 당연했던 거지.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 20:24,25)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가 짠 부활했을 때, 도마는 그 현장에 없었어! 다른 동료들이 와서 "도마야, 완전 대박, 대박! 예수가...세상에...부활했어~~" 이렇게 전해듣는 상황이었던 거지. 그럴 때 우리의 합리적 이성이자 경험주의자인 도마는 경거망동, 부화뇌동하지 않고 "일단 내가 보고~"라며 판단 유보를 한 거야. 나중에 예수가 직접 상처를 보여주자 곧바로 "님 예수 인정~"한 거고. 예수가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옷까고 상처 보여준 것도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해. 니 내 보고도 몬믿나, 믿으라, 믿으라 이 xx야. 이렇게 윽박지르지 않은 것. 쟤는 믿는데 넌 왜 안믿어? 라고 하지 않은 것. 도마의 스타일을 잘 아셨던 예수는 그래 이자슥아, 어디 함 만져봐라, 한 거지. 그리고 나서 인간적으로는 좀 섭섭하셨던 나머지 이렇게 덧붙이시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 20:29)
그렇다하더라도 나는 도마식 믿음에 한표를 던지니, 간절히 바라되 의심의 끈(지성)을 놓지 않는 것이 인간이 믿음(이라기보단 각성의 순간과 그 후에 오는 신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