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밤의 메모 * 어떤날

나의 진지함이 아무 쓸모 없다 느껴지는 밤...

생각 중... * 언젠가

너의 느낌은 너의 생각, 너의 동공으로 바라보았던 그날의 풍경들, 오랜 추억들, 들었던 빗소리들...너의 생각과, 마음 씀씀이, 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의미들, 네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 있는 분자들의 농도와 물결침. 신경망을 가로질러 가는 찰나의 화학반응들까지를 아우르기에 너의 느낌의 질감과 색상은 나와 다른데....

우리는 성긴 언어로 그 느낌을 표현하고, 미루어 서로의 느낌을 짐작하지만 결국 각자의 느낌의 색상을 조금씩 변화해가며 칠해나갈 뿐이다. 수채화처럼..그래서 느낌은 유화보다는 수채화에 가깝다.

건축은 그렇게 우리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넘 억지?)

꿈 아니 노동 * 어떤날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니가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우리는 꿈이 있다. 꿈이 있다고들 말한다. 꿈은 있는가. 꿈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어딘가에 숨어 있는가. 꿈은 우리가 언젠가 도달해야할 기나긴 여정의 종착지인가. 발견해 내기를 기다리며 꼭꼭 숨어 있는 보물찾기인가. 천국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는 복음의 말씀처럼 꿈도 알고보면 혹 바로 우리 곁에 있는 것인가. 깨달음을 통해 비로소 이르게 되는 법문같은 것인가. 지나고 보니 그게 꿈이었네, 놓친 버스 같은 건가.

한편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충만함으로 영위할 수 있나.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기쁨과 행복은 잡을 수 없는 찰나일 뿐인가. 과거형으로만 인식 가능한, 현재에서는 없는 기억같은 것인가.

다 좋다. 그런데 노동이 인생의 소명이 아니라면, 노동은 누가 해야 하는가. 누군가는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 과연 노동은 신성한 것인가.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희열과 보상과 자존감을 느낄 수 없는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노동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십년 전에도 나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풀리지 않는 숙제다.






우리가 짓는 것은 우리를 나타내는가? * 언젠가

텅빈충만 54
Are we, what we build?....직역하면 우리가 짓는 것은 우리인가?

나의 건축, 어떤 경지, 그리고 크레딧 * 어떤날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나는 생각한다. 나의 건축은 무엇인지, 나는 왜 건축을 하고 있는지, 나는 어떤 컨텐츠를 가져야 하는지. 내가 그들과 달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내 작은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지, 물리적 공간이든 무형의 공간이든.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있고, 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은 무엇인지.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이며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런데 남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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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경지를 늘 생각한다. 르 꼬르뷔제처럼, 미스처럼, 혹은 당대의 춤토르처럼. 자신만의 새로운 언어. 능수능란한 공간구성과 재료의 사용...하지만 건축을 너무 좁게 보는 건 아닐까. 건축을 있는 그대로 보자면, 건축의 시적인 순간은 순간일 뿐이다. 사업성, 내역서, 법규, 비지니스, 캐드, 야근, 설비....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나는 성공한 디자이너가 되어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야 하는가.
하여 이런 질문이 가능하겠다.
"르꼬르뷔제는 법규검토를 했을까. 춤토르는 사업성 검토서를 쓸까. 렌조 피아노는 내역서 엑셀파일을 들여다볼까. 성공한 건축가들은 캐드의 레이어명에 대해 퍼지에 대해 고민할까."
가까이는 조민석, 김인철, 김찬중은 어떻게 작업하고 있을까. 잘 모르지만 그들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대부분의 시간을 쓰면서-일들을 직접 처리하지 않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그 일들은 누가 하는가. 월급을 받기 위해 그 일을 하는 직원들은 행복할까. 월급을 받기 위해...라는 표현은 오직 월급을 받기 위해..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월급을 주니까 어쩔 수 없이...라는 뜻에 더 가깝다. 자, 어떤 대단한 작품이 있다. 혼자서는 못한다. 그 대단한 작품을 위해서는 별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고, 알아주지 않는 수많은 무명의 헌신이 있다. 나는 이 부분이 못내 못마땅하다. 영화는 엔딩크레딧이라도 있다. 첫째는 노동이 여전히 계급화되어 있다는 점. 단순히 상하의 단계가 아니라, 창의성-단순성, 성취감-반복성으로 구분되는 계급화. 지원하는 쪽과 지원받는 쪽이 있고, 모든 영광은 지원받는 쪽이 차지하는 방식. 둘째는 첫째와 같은 문제인데 크레딧의 문제. 명성의 독식 문제. 곧 역사기록의 문제네. 역사는 가리발디로, 링컨으로, 아인슈타인으로 기록된다. 역사기록의 대표성 문제. 돈만이 자본인가. 명성 자본주의...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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