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교보문고 쪽에서 들어오는 골목 어귀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구멍가게와 편의점이 있었다. 큰 길에서 접어들면 길이 활처럼 둥그렇게 구부러지며 사거리가 되는 곳인데 왕복 이차선이 될까말까하는 도로폭이지만 용케 마을버스도 정차하고, 네갈래 길 중 하나가 갑자기 언덕이 되면서 우리집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이어진다. 그곳에, 지금은 낡고 한 번도 지워내지 않은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황토색 타일의 삼층짜리 건물 일층에 구멍가게가 있다. 훗날 내가 욕심쟁이 할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갸날픈 몸집에 안경을 걸치고 어지간해서 손님이 뭘 물어도 대꾸를 하지 않는 할아버지가 그 가게 주인이다. 지금이야 휘양찬란한 편의점의 불빛에 더욱 초라하게 보일 뿐이지만 그 구멍가게도 반짝반짝하는 진열대와 힘찬 목소리로 손님을 맞이한 신장개업의 날이 있었겠지. 언제부터였을까, 진열대가 광택을 잃고 슈퍼 사장님이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된 순간은. 맞은 편 건물에서 뭐가 뚝딱뚝딱하더니 웬눔의 불야성 편의점이 생기고나서부터 할아버진 도통 재미가 없어지셨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젠 팔아도 재미가 없고 안팔면 그만이지 하는 심정이 되었고, 그리하여 사과 사러 온 동네총각에게 100원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한소쿠리를 봉지에 담다가 도로 내려놓으시며 팔 수 없다고 하시게 된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가 그분을 욕심쟁이 할아버지라고 부른 건 그때부터다. 그리고 그 이후
나의 편의점 출입이 잦게 되었다.(이런 문단 건너뛰기는 박민규꺼란 말이다.) 지역경제를 버리고 맞은편의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편입한 나의 소비행태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하기엔 좀..암튼 좀 그렇다. 일반적인 소비패턴을 따른 것이 아니라 그날의 100원사건으로 심하게 삐진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구멍가게 할아버지를 완전 외면할 수는 없었었는데, 그건 삼다수 때문이었다. 구미에서 올라오는 농심 무파마는 편의점이나 구멍가게나 가격이 똑같은데 제주에서 올라오는 제주삼다수는 이상하게도 300원이나 차이가 났다. 하여 주전부리는 편의점에, 삼다수는 구멍가게...라는 표어가 우리집에 나돌기 시작했다. 치졸한 거 같았지만, 100원 사건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그런 나날이 지나가고
어느날 편의점은 내부수리에 들어갔다. (자꾸 따라하지 마란 말이다.) LG나 GS나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거 같은데 비싼 돈 처들여가며 멀쩡한 간판을 바꾼다. 뭔가 그쪽 집안사정이 있으려니 하면서, 나는 무파마를 사러 구멍가게로 갔다. 욕심쟁이 할아버지 좋겠수, 당분간이나마, 하며 막상 오랜만에 활기를 찾은 듯 보이는 구멍가게를 보니 또 마음이 괜히 짠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어느날 삼다수를 사러갔다가 구멍가게 셔터가 내려져 있는 걸 보았다. 그날은 평일이었다. 아마도 GS로고가 익숙해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이었다. 어떤 경로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주인이 월세를 올렸고 욕심쟁이 할아버지에게 그 월세는 도저히 수지가 안맞았다는 후문을 들었다. 어김없이 마을버스는 들어오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퇴근하는 동네총각과 어김없이 출근하는 아가씨들이 어김없이 스쳐가는 네거리의 풍경은 그렇게 소리없이 바뀌었다. 100원을 사수하며 거대 프랜차이즈와 맞짱을 뜨셨건만...(절대로 비아냥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 자리엔 새로운 슈퍼가 들어섰다. 백열전구가 더 촘촘히 박히고 진열장은 다시 반짝거리게 됐으며 더 젋어진 부부가 카운터를 지켰다. 그들의 신무기는 눈깔사탕만한 쿠폰 스티커. 서른장인가 오십장을 모아오면 두루마리 화장지를 준다 했다. 아니다. 그들의 진짜 신무기는, 아니 최후의 카드라 부르는 게 옳을지도 모를 그것은 24시간 영업이었다. 아니 24시간 맞짱이었다. 어제 삼다수를 사러갔다. 백열전구는 아직 눈이 아플만큼 부시고 진열대는 여전히 반짝반짝했지만, 젋은 주인의 눈은 이미 만성이 된 피로에 짓눌려 얼굴가득 어둡고 침울하기만 했다. 망할 24시간 아닌가. 문득 둘러보니 욕심쟁이 할아버지의 구멍가게가 사라진 이 동네엔 이제 24시간 체제만 남은 것 같았다. 여기 말고도 몇 군데 더 24시간 영업을 하는 구멍가게가 있다. 가게에 딸린 단칸방에서 주무시다 미처 일어나지도 않은 채 얼굴만 내밀고 마는 주인이 있는 그런 곳도 있다. 그런 곳에 500원짜리 하드 하나를 사러 들어갔다 나오면 얼마나 미안해지는지 아는가.
진작 알아봤어야 했다. 팬시한 편의점이 들어설 때, 삼다수의 가격을 계산하느라 미처 놓쳤던 저들의 가공할 24시간 전략을. 이야기가 여기까지 올줄은 몰랐지만 나온김에 자, 생각해보라. 24간 영업은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서인가 기업의 이익 때문인가를. 잠못이루는 경제활동이 누구에게 득이 되겠는가를. 꺼지지 않는 그 불빛들이 피로에 지쳐 카운터를 지키는 저 젊은 주인의 눈빛을 어떻게 빨아들이고 있는지를. 이제 슬로우 푸드 운동과 더불어 슬리핑 운동...말하자면 잠 좀 자자 운동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표어가 적당하겠지."머 물끼라꼬 기나오나, 이제그만 잠 좀 자자." 이 운동은 편의점에 대한 일방적인 보이콧이 아니라, 주간과 야간의 소비를 구분하자는 거다. 그래서 더이상 소비패턴은 너희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운동은 현대인의 건강한 라이프싸이클을 되찾아주는 효용과 더불어 거대기업의 비인간적인(사실 야간 알바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영업전략에 반기를 듦으로써 인간의 얼굴을 한 마케팅이라는 기업윤리의 제고, 에너지 문제와 연계하여 환경운동의 지평으로까지 이어지는 21세기 시민사회 연대에 새로운 화두가 될 것이다. 한표 던지시라. 땅땅땅.
나의 편의점 출입이 잦게 되었다.(이런 문단 건너뛰기는 박민규꺼란 말이다.) 지역경제를 버리고 맞은편의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편입한 나의 소비행태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하기엔 좀..암튼 좀 그렇다. 일반적인 소비패턴을 따른 것이 아니라 그날의 100원사건으로 심하게 삐진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구멍가게 할아버지를 완전 외면할 수는 없었었는데, 그건 삼다수 때문이었다. 구미에서 올라오는 농심 무파마는 편의점이나 구멍가게나 가격이 똑같은데 제주에서 올라오는 제주삼다수는 이상하게도 300원이나 차이가 났다. 하여 주전부리는 편의점에, 삼다수는 구멍가게...라는 표어가 우리집에 나돌기 시작했다. 치졸한 거 같았지만, 100원 사건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다. 그런 나날이 지나가고
어느날 편의점은 내부수리에 들어갔다. (자꾸 따라하지 마란 말이다.) LG나 GS나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거 같은데 비싼 돈 처들여가며 멀쩡한 간판을 바꾼다. 뭔가 그쪽 집안사정이 있으려니 하면서, 나는 무파마를 사러 구멍가게로 갔다. 욕심쟁이 할아버지 좋겠수, 당분간이나마, 하며 막상 오랜만에 활기를 찾은 듯 보이는 구멍가게를 보니 또 마음이 괜히 짠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어느날 삼다수를 사러갔다가 구멍가게 셔터가 내려져 있는 걸 보았다. 그날은 평일이었다. 아마도 GS로고가 익숙해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이었다. 어떤 경로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주인이 월세를 올렸고 욕심쟁이 할아버지에게 그 월세는 도저히 수지가 안맞았다는 후문을 들었다. 어김없이 마을버스는 들어오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퇴근하는 동네총각과 어김없이 출근하는 아가씨들이 어김없이 스쳐가는 네거리의 풍경은 그렇게 소리없이 바뀌었다. 100원을 사수하며 거대 프랜차이즈와 맞짱을 뜨셨건만...(절대로 비아냥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 자리엔 새로운 슈퍼가 들어섰다. 백열전구가 더 촘촘히 박히고 진열장은 다시 반짝거리게 됐으며 더 젋어진 부부가 카운터를 지켰다. 그들의 신무기는 눈깔사탕만한 쿠폰 스티커. 서른장인가 오십장을 모아오면 두루마리 화장지를 준다 했다. 아니다. 그들의 진짜 신무기는, 아니 최후의 카드라 부르는 게 옳을지도 모를 그것은 24시간 영업이었다. 아니 24시간 맞짱이었다. 어제 삼다수를 사러갔다. 백열전구는 아직 눈이 아플만큼 부시고 진열대는 여전히 반짝반짝했지만, 젋은 주인의 눈은 이미 만성이 된 피로에 짓눌려 얼굴가득 어둡고 침울하기만 했다. 망할 24시간 아닌가. 문득 둘러보니 욕심쟁이 할아버지의 구멍가게가 사라진 이 동네엔 이제 24시간 체제만 남은 것 같았다. 여기 말고도 몇 군데 더 24시간 영업을 하는 구멍가게가 있다. 가게에 딸린 단칸방에서 주무시다 미처 일어나지도 않은 채 얼굴만 내밀고 마는 주인이 있는 그런 곳도 있다. 그런 곳에 500원짜리 하드 하나를 사러 들어갔다 나오면 얼마나 미안해지는지 아는가.
진작 알아봤어야 했다. 팬시한 편의점이 들어설 때, 삼다수의 가격을 계산하느라 미처 놓쳤던 저들의 가공할 24시간 전략을. 이야기가 여기까지 올줄은 몰랐지만 나온김에 자, 생각해보라. 24간 영업은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서인가 기업의 이익 때문인가를. 잠못이루는 경제활동이 누구에게 득이 되겠는가를. 꺼지지 않는 그 불빛들이 피로에 지쳐 카운터를 지키는 저 젊은 주인의 눈빛을 어떻게 빨아들이고 있는지를. 이제 슬로우 푸드 운동과 더불어 슬리핑 운동...말하자면 잠 좀 자자 운동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표어가 적당하겠지."머 물끼라꼬 기나오나, 이제그만 잠 좀 자자." 이 운동은 편의점에 대한 일방적인 보이콧이 아니라, 주간과 야간의 소비를 구분하자는 거다. 그래서 더이상 소비패턴은 너희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 운동은 현대인의 건강한 라이프싸이클을 되찾아주는 효용과 더불어 거대기업의 비인간적인(사실 야간 알바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영업전략에 반기를 듦으로써 인간의 얼굴을 한 마케팅이라는 기업윤리의 제고, 에너지 문제와 연계하여 환경운동의 지평으로까지 이어지는 21세기 시민사회 연대에 새로운 화두가 될 것이다. 한표 던지시라. 땅땅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