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다가 이승복 어린이 이야기가 나왔다. 이승복 어린이에 관한 나의 추억 한토막.
초등학교 6학년 때다. 학교 종이 땡, 하고 울리자 동무들과 잽싸게 운동장으로 내달리던 나는 담임선생님의 부름을 뒤통수로 받고선 혼자 교실에 남게 되었다. 원래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던 나는 당시 전근을 오자마자 우리반을 맡은 선생님에게 그다지 애정(?)이 없었다. 아마 이마며 코를 늘 반질반질하게 만들었던 당신 얼굴의 기름기도 우리의 소원한 관계에 한 몫했으리라. 그렇다. 우리는 둘 다 서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뭐 그건 할 말 없다. 당시의 나는 고삐풀린 개망나니였으니까. 전근 오신지 얼마 안되어 업무파악 하시느라 학교에서의 나의 입지를 아직 잘 모르시니까...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고삐풀린 건 망나니가 아니고 망아지가 아니었던가. 암튼.
멀리 부산항과 영도가 아련히 내려다 보이는 교실에서 선생님과 내가 나눈 대화는 이런 것이었다.
- 내일 옷 좀 단정하게 입고와.
- 네?
- 내일 아침 조례 시간에 상받을 거니까.
- ...? (월말고사 우등상 받은지가 엊그젠데...?)
- 뭐...니가 반공정신이 투철하댄다...선생님들이...
- 네? (뭔소리여...언제 글짓기 했었나?)
- 그니까...반공 어린이 상 줘야 되는데, 오늘 교무 회의에서 너 주기로 선생님들이 결정했으니까 그리알어.
- ...네에...
선생님의 시큰둥한, 약간 놀리는 듯한 말투 때문에 나는 이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이 나를 별로 예뻐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것으로 말하자면 아까 말했듯이 나도 선생님을 별로라고 생각하던 차여서 아무렇지 않았다. 단지 별 것 아닌 상 - 그렇지, 그때도 그건 정말 별 것 아닌 상이라 느꼈다 - 을 통보하는 자리에서 선생님과 나 사이에 미묘한 감정의 기류가 흘렀다는 게 기묘하고 웃겼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교실을 나서며
'아 김유홍 학생은 안됩니다. 담임인 저로서는 그런 고삐풀린 개망아지 (선생님이니까 제대로 말하셨을 거다.)에게 시에서 주는 반공 어린이 상이라니요, 차라리, 흠흠, 어...모두 찬성하신다고요? 에...저만 반대네? 뭐 정 그러시다면...그까짓 상 아무나 주면 어떻습니까 뭐. 어흐어흐.'
라고 말하는 교무회의 때의 선생님 모습을 그리며, 옹졸한 울 선생님, 쯔쯔, 하며 혼자 혀를 찼다. 아니 어쩌면 그건 어린놈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그날 피곤하셨기 때문에 말이 잘 안나왔을 수도 있다. 어쩌면 선생님은 이 남사스러운 반공 어린이 상을 두고 교육자적 양심으로 국가의 반공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드셨다가 교장선생님의 반대에 부딪치자 그만 조소를 날린 것이고, 그 조소가 나를 부를 때까지 입가에 남았던 것이고, 이 답답한 시국과 시덥잖은 교육 현실을 토로하자니 저 개망아지가 알아 들을 리 없고 해서 그냥 툭 내뱉은 말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때는 바야흐로 1987년이었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죽고 이한열 열사가 최류탄을 맞아 돌아가신, 온 나라가 뜨거운 6월 항쟁에 휩싸였던 해였다.
다음날. 나는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학교 우등상보다 2.5배나 큰 사이즈의 반공 어린이 상장을 바람에 펄럭이지 않게 하느라 애쓰면서 평소보다 두 배나 긴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그게 아직 집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코미디 소재로 부족함이 없는 상장이었다. 쓸데없이 커서 상장을 모아두던 매리야스 종이상자에도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글씨 아래엔 연군청색으로 은은한 저 이승복 어린이 동상 그림이 바탕화면으로 깔려 소장가치를 더하고 있었다. 위 어린이는 평소 반공정신이 투철하여 나불나불 타의 모범 나불나불. 가장 미스테리한 것은 맹세코 나는 반공활동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이다. 허구한 날 학교 운동장 모래를 한웅큼씩 신발로 퍼다 나르고, 부산역 광장이 제 집 앞마당인 줄 알고 놀던 놈이 언제 간첩신고 하고, 앞서 가는 등산객 다시 볼 새가 있었겠는가. 아, 그러고 보니 반공에 관한 글짓기를 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긴 한다. 젠장, 그거였나. 이승복 어린이를 본받아 반공 잘 하고, 적화통일 안되게 국력을 기르도록 이 한몸 바치겠다고 쓴 거, 그거 진심은 아니었는데. 그럼 그때 다른 아이들은 이승복 어린이가 실존인물인지는 잘 모르겠고, 반공보다는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연방제나 어서 빨리 합의하는 게 통일로 가는 척결이라고 썼더란 말인가.
나는 이승복 어린이 이야기가 당시 지배세력과 그에 빌붙은 언론 나부랭이들의 웃기는 창작물이라 믿고 있다. 그럼에도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한 것이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 그게 더 웃기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민군이 싫어요"라면 몰라도. 만약 북파 공작원이 우여곡절 끝에 임진각을 넘어 개성인근의 어린 동무를 죽이려 했다치자. 아이는 뭐라 외쳤을까. "고저, 나는 미제의 앞잡이 남조선 괴뢰 정부에서 북파한 정보부 소속 무장간첩, 당신이 싫습네다"라면 몰라도 "나는 민정당이 싫어요"라고 하지는 않았을텐데. 왜 나는 공산당 = 무장공비와 같은 등식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을까. 공산당은 한나라당처럼 하나의 정당일 뿐, 한나라당 의원이나 당원이 직접 외딴섬에서 특수 훈련을 받고 무장간첩으로 북파될 리는 없는데 말이다. 북조선은 공산당 일당체제니까 그렇게 봐도 상관없다는 건가. 풋, 왜이러시나. 독재라면 여기 남쪽도 한가닥 했다우. 그러니 어릴 때 늘 북조선의 군사조직을 공산당이라 부른 건 확실히 좀 이상하다. 여태껏 나는 공산당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총칼을 든 군인의 모습이었다. 아직까지도! 하긴 애들 보는 책에다가 북쪽 사람의 얼굴은 죄다 늑대로 그려대는 나라였으니...
어쨌거나 민주화의 열기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87년 그 해, 그러고도 전국에서 가장 치열한 투쟁을 벌여 나간 도시 중 하나였던 부산의 한 작은 초등학교에서는 반공 어린이 시상식이 열리고 있었다는, 미시사적이고도 나의 개인사적인 기록이다. 참, 민망한 일이었다 아니 할 수 없는...
초등학교 6학년 때다. 학교 종이 땡, 하고 울리자 동무들과 잽싸게 운동장으로 내달리던 나는 담임선생님의 부름을 뒤통수로 받고선 혼자 교실에 남게 되었다. 원래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던 나는 당시 전근을 오자마자 우리반을 맡은 선생님에게 그다지 애정(?)이 없었다. 아마 이마며 코를 늘 반질반질하게 만들었던 당신 얼굴의 기름기도 우리의 소원한 관계에 한 몫했으리라. 그렇다. 우리는 둘 다 서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뭐 그건 할 말 없다. 당시의 나는 고삐풀린 개망나니였으니까. 전근 오신지 얼마 안되어 업무파악 하시느라 학교에서의 나의 입지를 아직 잘 모르시니까...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고삐풀린 건 망나니가 아니고 망아지가 아니었던가. 암튼.
멀리 부산항과 영도가 아련히 내려다 보이는 교실에서 선생님과 내가 나눈 대화는 이런 것이었다.
- 내일 옷 좀 단정하게 입고와.
- 네?
- 내일 아침 조례 시간에 상받을 거니까.
- ...? (월말고사 우등상 받은지가 엊그젠데...?)
- 뭐...니가 반공정신이 투철하댄다...선생님들이...
- 네? (뭔소리여...언제 글짓기 했었나?)
- 그니까...반공 어린이 상 줘야 되는데, 오늘 교무 회의에서 너 주기로 선생님들이 결정했으니까 그리알어.
- ...네에...
선생님의 시큰둥한, 약간 놀리는 듯한 말투 때문에 나는 이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이 나를 별로 예뻐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것으로 말하자면 아까 말했듯이 나도 선생님을 별로라고 생각하던 차여서 아무렇지 않았다. 단지 별 것 아닌 상 - 그렇지, 그때도 그건 정말 별 것 아닌 상이라 느꼈다 - 을 통보하는 자리에서 선생님과 나 사이에 미묘한 감정의 기류가 흘렀다는 게 기묘하고 웃겼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교실을 나서며
'아 김유홍 학생은 안됩니다. 담임인 저로서는 그런 고삐풀린 개망아지 (선생님이니까 제대로 말하셨을 거다.)에게 시에서 주는 반공 어린이 상이라니요, 차라리, 흠흠, 어...모두 찬성하신다고요? 에...저만 반대네? 뭐 정 그러시다면...그까짓 상 아무나 주면 어떻습니까 뭐. 어흐어흐.'
라고 말하는 교무회의 때의 선생님 모습을 그리며, 옹졸한 울 선생님, 쯔쯔, 하며 혼자 혀를 찼다. 아니 어쩌면 그건 어린놈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그날 피곤하셨기 때문에 말이 잘 안나왔을 수도 있다. 어쩌면 선생님은 이 남사스러운 반공 어린이 상을 두고 교육자적 양심으로 국가의 반공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드셨다가 교장선생님의 반대에 부딪치자 그만 조소를 날린 것이고, 그 조소가 나를 부를 때까지 입가에 남았던 것이고, 이 답답한 시국과 시덥잖은 교육 현실을 토로하자니 저 개망아지가 알아 들을 리 없고 해서 그냥 툭 내뱉은 말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때는 바야흐로 1987년이었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죽고 이한열 열사가 최류탄을 맞아 돌아가신, 온 나라가 뜨거운 6월 항쟁에 휩싸였던 해였다.
다음날. 나는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학교 우등상보다 2.5배나 큰 사이즈의 반공 어린이 상장을 바람에 펄럭이지 않게 하느라 애쓰면서 평소보다 두 배나 긴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그게 아직 집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코미디 소재로 부족함이 없는 상장이었다. 쓸데없이 커서 상장을 모아두던 매리야스 종이상자에도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글씨 아래엔 연군청색으로 은은한 저 이승복 어린이 동상 그림이 바탕화면으로 깔려 소장가치를 더하고 있었다. 위 어린이는 평소 반공정신이 투철하여 나불나불 타의 모범 나불나불. 가장 미스테리한 것은 맹세코 나는 반공활동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이다. 허구한 날 학교 운동장 모래를 한웅큼씩 신발로 퍼다 나르고, 부산역 광장이 제 집 앞마당인 줄 알고 놀던 놈이 언제 간첩신고 하고, 앞서 가는 등산객 다시 볼 새가 있었겠는가. 아, 그러고 보니 반공에 관한 글짓기를 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긴 한다. 젠장, 그거였나. 이승복 어린이를 본받아 반공 잘 하고, 적화통일 안되게 국력을 기르도록 이 한몸 바치겠다고 쓴 거, 그거 진심은 아니었는데. 그럼 그때 다른 아이들은 이승복 어린이가 실존인물인지는 잘 모르겠고, 반공보다는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연방제나 어서 빨리 합의하는 게 통일로 가는 척결이라고 썼더란 말인가.
나는 이승복 어린이 이야기가 당시 지배세력과 그에 빌붙은 언론 나부랭이들의 웃기는 창작물이라 믿고 있다. 그럼에도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한 것이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 그게 더 웃기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민군이 싫어요"라면 몰라도. 만약 북파 공작원이 우여곡절 끝에 임진각을 넘어 개성인근의 어린 동무를 죽이려 했다치자. 아이는 뭐라 외쳤을까. "고저, 나는 미제의 앞잡이 남조선 괴뢰 정부에서 북파한 정보부 소속 무장간첩, 당신이 싫습네다"라면 몰라도 "나는 민정당이 싫어요"라고 하지는 않았을텐데. 왜 나는 공산당 = 무장공비와 같은 등식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을까. 공산당은 한나라당처럼 하나의 정당일 뿐, 한나라당 의원이나 당원이 직접 외딴섬에서 특수 훈련을 받고 무장간첩으로 북파될 리는 없는데 말이다. 북조선은 공산당 일당체제니까 그렇게 봐도 상관없다는 건가. 풋, 왜이러시나. 독재라면 여기 남쪽도 한가닥 했다우. 그러니 어릴 때 늘 북조선의 군사조직을 공산당이라 부른 건 확실히 좀 이상하다. 여태껏 나는 공산당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총칼을 든 군인의 모습이었다. 아직까지도! 하긴 애들 보는 책에다가 북쪽 사람의 얼굴은 죄다 늑대로 그려대는 나라였으니...
어쨌거나 민주화의 열기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87년 그 해, 그러고도 전국에서 가장 치열한 투쟁을 벌여 나간 도시 중 하나였던 부산의 한 작은 초등학교에서는 반공 어린이 시상식이 열리고 있었다는, 미시사적이고도 나의 개인사적인 기록이다. 참, 민망한 일이었다 아니 할 수 없는...




